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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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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오늘 떠나요 공항으로 핸드폰 꺼 놔요 제발 날 찾진 말아줘~'
후끈거리는 차 안에 올라타 제일 먼저 한 일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핸드폰에 연결하고 노래를 트는 것이다.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라 그 기분에 한껏 취한 우리는 먼저 볼빨간 사춘기의 여행을 틀었다. 내 핸드폰은 오빠의 네비게이션이 되었고 나는 오빠의 핸드폰으로 노래를 찾고 있었다. 어렸을 때 부터 차만 타면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들어 버리는 나는 오늘은 오빠가 졸리지 않도록 기필코 잠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차 안의 공기가 조금 시원해 질 때 쯤 에어컨은 최대한 낮추고 나는 차 뒷 자석의 셔츠를 꺼내 입었다. 락페스티벌에 다녀 온 직후라 오늘의 노래 리스트는 그때의 가수들 노래로 가득했다.0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며칠 전 세워 놓은 계획을 다시금 떠올렸다. 목적지는 통영, 나는 처음 가보는 도시였다. 더운 날씨라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내내 좋았다.
'띠링띠링 잠시 후 목적지 부근입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부산과 통영은 꽤 가까운 거리였다. 오빠와 얘기를 얼마 나누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금새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우리는 서피랑 마을로 향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곳은 서포루였다. 한 동안 그 정자에서 쉬며 땀을 식혔다. 나는 잠깐 정자에 누웠다가 개미에게 물렸지만 누워서 바라 본 통영의 청명한 하늘과 서포루의 처마는 너무나도 예뻤다. 태풍 때문에 비가 온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하늘은 말그대로 하늘 색이었고 작열하는 태양은 우리를 땀으로 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더운 날씨에 걸으면서 이곳 저곳 사진을 찍으면서 지친 우리에게 힘을 불어 넣어 준 곳이 있는데 그 곳은 나무 실로폰과 피아노 계단이었다. 계이름을 아는 동요를 총 동원하여 어린아이가 된 듯 열심히 연주했더랬다. 연주를 끝마치고 향한 곳은 '서피랑 떡복기집' 밖은 새로 간판을 단 듯 새거처럼 보였는데 안은 그냥 동네의 분식집이었다. 튀김과 떡볶이 1인분씩 먹었는데 5천원 밖에 안했다. 닭튀김과 다진 청양고추 쫑쫑 올려진 떡볶이의 조화는 이루말할 수가 없었다. 바로 옆 이것저것을 파는 점빵에서 얼음물을 하나 사들고 동피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중앙시장쪽으로 가게 되었는데 마침 우리가 간 날이 한산대첩축제의 마지막 날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프리마켓이 한창이었다. 그래서 거북선 무료관람을 간단히 하고 곧장 프리마켓으로 향했다. 거기서 마음에 드는 핸드메이드 가방도 샀다. 프리마켓을 한 바퀴 돌려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근처 고등학교 학생들이 위안부 할머님들을 위해 캠페인을 하는 것을 보았다. 위로, 응원의 말 한마디를 적어서 보내드리는 거라고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했던 동아리 생각나기도 했고 좋은 취지의 캠페인이라 생각해서 오빠에게 같이 글을 쓰자고 했다. 오빠는 글재주가 없다며 무슨 말을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못쓰겠다고 했지만 그냥 아무말이나 써도 좋으니 써보자고 오빠를 자리에 앉혔다. 둘다 포스트잇에 글귀를 남기고 나서 후원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 학생이 디자인한 배지를 구입하면 그 돈으로 할머님들께 후원을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물건을 만들지 못해서 연락처를 남겨놓으면 만들어 진 후에 물건을 보내주고 입금을 하면 된다고 했다. 우리는 둘다 너무 좋은 일이라며 바로 연락처를 남겼다. 그리고 나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동피랑에 도착했다. 남들 다 찍는다는 날개 벽화를 시작으로 마음에 드는 벽화 앞에 서서 꽤 사진을 많이 찍었다. 서포루를 갔으니 동포루를 포기하고 우리는 울라봉을 가기로 결정했다. 쌍욕라떼로 유명한 곳이었다. 나는 동피랑 꼭대기에 있는 왠지 허름하고 좁은 나이 많은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카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울라봉에 도착하고 나는 내가 얼마나 선입견에 가득 찬 사람인지 깨달았다. 길을 가다 오빠에게 여기 좀 보라며 카페가 참 예쁘다고 말했는데, 오빠가 여기가 울라봉이라 했다. 내가 생각한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인별그램 감성으로 가득찬 카페였다. 예쁘고 깔끔하지만 조금은 불편한 좌석과 테이블, 꽤 넓은 공간과 동피랑 아래에 위치한 카페. 커피를 못마시는 우리는 녹차라떼와 초콜렛라떼를 시켰고,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힙한 사장님이 욕이 가득한 라떼를 가져다 주셨다. 욕을 쓰기 전 간단한 인터뷰 같은 것을 하는데, 얼마전 2주년이라고 했더니 거기에 대한 욕을 써 주셨다. 조금은 아쉬웠으나 나름 재미있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 공원을 갈 참이었는데 주차를 해놓고 나갔더니 앞에 다른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있어 차를 가지고 나가기가 굉장히 애매했다. 그래서 공원은 포기하고 바닷길을 쭉 따라 걸으면 나오는 해저터널을 가기로 했다. 사장님의 추천도 한 몫했다. 해저터널은 이게 해저터널인지 그냥 터널인지 모를 정도로 아무것도 없어서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간간히 있는 사람들 덕에 우리 겁쟁이 커플은 한시름을 놓았다. 그래도 시원하고 신기했다. 실컷 걷고나니 배가 고파진 우리는 중앙시장으로 갔다. 회센터에서 한번도 회를 먹어 본 적이 없는 나를 위해 시장에서 회를 먹기로 했다. 광어와 우럭을 고르고, 초장값을 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앉았다. 싸우지도 않고 둘이 죽이 척척 맞게 잘 흘러간 하루였다. 뭐가 그리 기분이 좋았는지 우린 엄청 들떠있었고 그 기분에 취해 회와 간단히 술을 한잔 했다. 그날 따라 술이 엄청 잘 들어갔고 기분 좋게 취한 채 하루를 마무리 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우리였다. 2주년 기념으로 온 여행의 첫 발걸음이 좋아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많은 여행을 할 우리지만 오늘만 같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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